2009년 01월 19일
재밌다만, 딴지 좀 걸자! <꽃보다 남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목 부근이 간질간질하다. '궁'에 이어 본격 하이틴 판타지 드라마를 표방하는 '꽃보다 남자'는 그렇게 재미있다. 꽃보다 아름답다는 F4가 진짜로 후광을 비추며 나타났을 때, 손발이 오그라드는 낯뜨거움에도 사춘기 소녀처럼 볼이 발그레해지는 기분이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이민호의 미모는 감탄을 자아내고 연기는 심각하지만 김현중은 만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으며 범이의 시크함은 고딩 주제에 이 누나의 가슴에 마구 불을 질러댄다. 그래, F4가 있는 한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든 꽃보다 남자는 절대 실패할 수 없겠구나,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실은 그래서 더욱 불만이다. 원작의 팬이었고 2005년 판 일본드라마의 절대 지지자로서 한국판의 몇가지는 너무 아쉽다.

잔디, 넌 왜케 짜증이 많니?
꽃남 이전, 자고로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은 특별히 예쁘지 않은 것이 미덕이나 멍청할 정도로 착하거나 밝고, 궁상맞거나 눈물이 많았다. 그러나 꽃남의 여주인공은 오로지 '정의감' 하나 타고난 무사였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보다 당당했고, 괜히 튕기거나 남주인공과 벌 거 아닌 일로 짜증 나는 싸움을 일삼는 변방의 순정만화 여주인공과도 차별화 포인트가 있었다. 원작을 거의 따라간 대만판은 재쳐두고 일본판 츠쿠시 역시 그랬다. 삼국의 여주인공을 통틀어 원작과 가장 흡사한 이미지를 가진 이노우에 마오는 앙 다문 입으로 '아리에나이츠노'를 외치며 자신의 분노와 정의감을 내보였고 통통 스텝을 밟으며 날리는 주먹질로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했다. 사건사고 많은 주변 때문에 항상 분주한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단정한 교복차림과 잘 어울렸다.
반면 한국의 금잔디. 희극적인 면이 다분하지만 구혜선의 연기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꽃남의 1회를 제외하고는 잔디에게서 도무지 정의감과 당당함이 보이지 않는다. 회를 거듭할수록 잔디는 다부지게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니라 늘 무언가 불만인 듯 입을 삐쭉거린다. 대사와 표정은 온통 "난 구준표 너한테 짜증 나 있다"를 부르짓고 호화판 파티에 몇번이나 끼어서는 잔뜩 주눅든 자세를 취한다. 원작의 츠쿠시는 아무렇게나 입고도 당당할 줄 알았는데 유독 잔디는 너무나 자주 남들이 입혀준 옷을 낼름 받아입고 대뜸 소리나 질러댄다. 이런 츠쿠시라면, 끽해야 변방의 순정만화 여주인공과 다를 바 없다. 적어도 내가 사랑한 츠쿠시라고 하기엔 너무 무르고 평범하다.
가난하지 않은 잔디, 멍청하지 않은 준표
꽃남이 최고 막장 드라마로 뽑혔다는 기사를 읽었다. 왜 이러시나. 꽃남은 원래 막장이었다. 원작의 이지메 장면에선 심지어 애를 차에 메달아 끌고 다니기까지 한다. 이지메 강도를 포함해 강간미수, 폭행, 츠카사 엄마의 방해공작이 아니었다면 꽃남이 무슨 재민가. 장애 강도가 엄청나니 미워 죽겠는 두 사람이 좋아 죽겠는 사이가 되는 게 이해되는 거 아니겠나. 그러니 그 멍청한 꽃미남이 다시 없는 매력남이 되는 것 아니겠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꽃남의 에피소드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배경이 있었다. 츠쿠시가 당장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 츠카사가 단순하고 멍청한 뒤틀린 성격의 덜 큰 어른이라는 것이다.
한국판 꽃남은 이 두가지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선 잔디는 츠쿠시에 비해 상당히 평범하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긴 하지만 수영만 하면 등록금은 신경쓰지 않을 정도는 되고 부모는 어쨌거나 자영업자다. 가난은 원작의 츠쿠시를 움직이게 하는 근거가 됐지만 잔디에게 들이대긴 희박하다. 준표도 츠카사에 비해 평범하긴 마찬가지다. 백로와 백조를 헷갈렸던 것 외에는 특별히 멍청한 모습을 보여준 적 없고 1회에 학생 하나를 자살 직전까지 가도록 방조한 주역이라고 보기엔 수영장에 오리나 풀어놓는 초딩같은 장난질도 갭이 크다. 덜 멍청한 것과 더불어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고작 4회에 벌써 순정 대사를 읇조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하지도 않고 멍청하지도 않은 두 주인공이 시청자를 설득하는 과정없이 원작의 에피소드를 풀어가겠다는 건데, 그렇다면, 사실 지루하다. 원작은 물론이고 대만판, 일본판까지 본 꽃남의 팬들에게 에피소드는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갈 수 없을 때 에피소드만으로는 이야기가 후달리기 마련이다.
꽃남의 비쥬얼은 F4가 전부?
꽃남은 닳고 닳은 콘텐츠다. 원작이 나온 이래 대만판 드라마와 일본판 드라마 1,2부, 영화가 만들어졌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선 1995년에도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더이상 새로울 것 없는 이 이야기의 매력은 역시 F4다. 'Flowers 4'라는 흡사 '7공주파'와 같은 불량 사교 모임이 생각나 배꼽을 잡고 웃었던 이 설정은 원작의 등장인물이 그다지 꽃스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상상의 즐거움을 주었다. 이 시각적 상상을 구현해준 것이 대만판이었고 여기에 럭셔리 상류 사회의 비쥬얼을 얹혀 이들의 가치를 더한 것이 일본판이었다. 한국판 꽃남의 F4는 삼국을 통틀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고데기로 우스꽝스럽게 머리를 말아올린 이민호는 덕분에 원작의 츠카사와 거의 흡사해졌다. 그 황홀한 기럭지에 뚜렷한 이목구비는 심지어 중독성마저 있다. 사진 한 장으로 캐스팅 됐다는 게 이해 가고도 남는다.
김현중이 좀 더 자연스럽게, 유연하게 연기해줬으면 좋겠다는 건 욕심으로 치고 F4의 비쥬얼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렇지만 꽃남의 역사는 F4의 비쥬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시기를 지났다. 일본판이 이미 상류 사회를 구경하는 재미를 줬고 더불어 어떤 렌즈를 썼는지 모르겠다만 뽀샤시한 땟깔까지 겸비하지 않았던가. 반면 한국판은, 영어마을부터 홀딱 깬다. 구준표의 집도 굴지의 재벌이라 하기엔 어쩐지 빈티가 느껴진다. 더구나 말 그대로 왕자님이어야 할 윤지후는 왜 날도 추운데 바싹 마른 나뭇가지 사이에서 초라하게 바이올린을 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꽃남의 회가 거듭될수록 드는 생각은 '이왕 만들 거 돈 좀 쓰지' 하는 것 뿐.
리얼리티에 대한 마지막 딴지
큰 문제는 아닐지 모르지만 기왕 딴지 건 김에 최소한의 리얼리티도 말하고 싶다. 꽃남은 평범한 소녀가 재벌가 도련님 만나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빠진다는 하이틴 판타지 로맨스다. 한국판 꽃남이 이 판타지에 방점을 찍어 시트콤처럼, 만화처럼 만들겠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는 있다. 다만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다면 형식이 어떻든 보는 입장에선 맥 빠질 수 밖에 없다.
믿기 힘들지만 꽃남의 주인공들은 고딩이다. 그런 주제에 술집을 드나들며 연상의 여자를 꼬셔대고 상류층 파티에 지들이 주인인양 휘젓고 다닌다. 반면 넷이 우르르 몰려다닐 정도로 유치하고 츠카사는 어쨌거나 멍청하며 결국 두 주인공 모두 보호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꽃남의 판타지를 용인하게 하는 건 또래의 행동반경을 무시하는 뻔뻔스러움과 이들이 미성년임을 보여주는 관계와 배경의 제약이다. 생일 한번 더럽게 빨라 F4 모두 최고급 스포츠카를 모는 건 눈감아 줄 수 있으니, 아무리 심의가 걸리더라도 와인잔에 오렌지쥬스를 따라주는 질 낮은 센스는 피해주시길. 그랬다면 고작 금잔디 마음껏 울라고 술집을 통째로 빌리는 오버는 하지 말아주시길. 더이상 잔디에게 있지도 않은 시급 7만원의 통통배 고기잡이 아르바이트는 시키지 말아주시길. 곧 있으면 집안 빚 값겠다고 요상한 대회에 나갈 잔디가 몇백만원짜리 물안경을 홀랑 받아들게 하지 말아주시길.
아~ 딴지가 길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고 기대가 컸던 만큼 초반의 실망도 컸을 뿐이다. 나 역시 다른 꽃남의 팬들과 마찬가지로 한국판 꽃남이 나름의 궤적을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대만판 꽃남이 꽃남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일본판 꽃남이 꽃남의 성공을 증명했듯이. 3,4회에 살짝 기운을 빼긴 했지만 여전히 꽃남의 힘을 믿고 앞으로의 꽃남도 기대한다.
뭐, 그래도 어쨌거나, 이정은 간지럽고 준표는 멋지다. +.+
# by | 2009/01/19 18:04 | 드라마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6)
2007년 08월 27일
[일드] 호타루의 빛 - 사랑이라는 빛의 점등과 소등

사랑을 시작하는 이, 사랑을 정리하는 이
원작이 만화인 드라마지만 만화와 비교하는 건 실례일 것 같다. 드라마를 보고 만화를 봤지만 채 30장을 보지 못하고 포기했다. 만화는 '건어물녀'라는 재미있는 설정 외에는 그닥 특별한 게 없었다. 만화를 원작으로 했지만 드라마 '호타루의 빛'은 여러 재기발랄한 설정이 즐비하다.
먼저 '건어물녀'의 캐릭터 설정. 개인적으로 '노다메' 이후 가장 개성있는 여성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느낀 연애감정을 어떻게 진행시켜가야할 지 모르는 호타루의 소동은 사랑스럽다. 사랑에 빠진 상대에게 온 메일에 어떻게 답 메일을 보내야할 지 고민하고, 전혀 자연스러워지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도망가고, 첫 데이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는 호타루는 '건어물녀'의 설정과 진보를 보여준다.
'동거'를 다루는 방식도 재미있다. 처음 '호타루의 빛' 설정을 봤을 땐 부장과 호타루의 러브모드를 상상했다. 이전의 드라마가 동거를 다루는 방식이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타루의 빛'은 이 기대(?)를 무너뜨린다. 아직 4회 정도 남아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부장은 단순한 동거인으로 호타루의 진면목을 짚어주고 사랑을 향해 서투른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인물로 포지셔닝되어 있다.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호타루의 빛'은 사랑의 시작과 끝을 얘기한다.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않았던 호타루는 걸음마를 배우듯 차례차례 연애를 배워가며, 아내와 별거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본가이자 호타루의 전세집으로 들어오는 부장은 오랫동안 함께한 사랑과 이별의 단계를 밟아간다. 한 공간에 엮인 두 인물이 진심으로 자신들의 고민을 나누며 다른 사랑으로 나아가는 방식은 다른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 드라마의 특장점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호타루는 같은 회사의 연하남인 마코토와 사랑에 빠진다. '건어물녀'의 홈그라운드를 지배하는 두 인물 외에 중요한 축이 되는 인물이 마코토다. 그런데 이 마코토는 드라마 속에서 그다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보여지는 모습만 보여주고 들려지는 모습만 들려준다. 호타루가 애닳아 고민하는 게 십분 이해가 간다. 마코토가 호타루를 좋아하는 건 분명해보이는데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딱 호타루가 이해하는 것 만큼 이해하고 있는 느낌이다.
다른 드라마였으면 주인공의 비중을 차지했을 인물을 한 발 물러서 가다가는 방식이 이 드라마의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이다. 어차피 연애라는 게 상대의 마음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이 드라마는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의 연애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밝히는 불빛으로의, 한 사람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단계로서의 연애를 다루고 있지 않은가. 호타루에게 사랑은 마코토라서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삶의 전환점이기에 의미있는 것이다.
이제 4회 남았다. 예고를 보니 호타루가 마코토와 진짜 동거를 선언하는 모양이다. 자신의 '건어물녀'로서의 모습을 솔직히 보여주겠다나. 진심으로 궁금해지는데, 내가 보기엔 사랑스럽기만 한 호타루가 정말 '무서운' 엽기녀의 모습인걸까? 무섭다고 하기에는 아야세 하루코의 호타루,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프로포즈 대작전'에서 마사미의 약혼남으로 등장했던 부장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나. 별 기대없이 보기 시작한 이 드라마의 남은 4회가 못견디게 기대된다.
# by | 2007/08/27 22:36 | 드라마 이야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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