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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대통령

16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02년 12월 19일, 나는 금강산에 있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4학년 선배들, 동기들과 함께 떠난 졸업여행이었다. 정치외교 전공자로서 금강산을 졸업여행지로 택한 것은 의미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여행 기간에 걸려있는 대통령 선거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현실 정치가 어쩌구, 대의민주주의가 어쩌구 하며 선거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성인이 되어 첫 번째로 맞이한 대통령 선거를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여, 고민 끝에 우리는 부재자투표를 신청해 투표하고 각자 자신이 선택한 대통령 후보를 마음에 두고 금강산으로 떠났다. 

눈 쌓인 금강산 자락을 확인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진부한 표현 밖에 떠오르지 않는 그 황홀한 절경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지금, 그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아름다운 경치에 더해졌던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 철회 소식과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소식이다.

정치외교 전공생들이 금강산에 왔다는 게 대단한 소식이었는지 당시 우리는 여행지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만나는 이마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 "남한에 북한에 호의적인 대학생들이 있다는 데 사실이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따위의 질문을 받았다. 누구도 그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하지 않았고 누구도 곧 있을 선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다음 날. 첫 날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정몽준의 지지 철회 소식을 들은 뒤였다. 대부분 동일한 후보를 지지하던 우리는 남한에서 투표가 진행되는 그 날 금강산 절경을 돌아보면서도 틈날 때마다 노무현을 걱정했다. 

남한의 상황을 알 수 없었던 우리는 정몽준의 발언이 노무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끝나겠구나 싶어 숙소로 돌아와 개표현황을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그 때 먼저 개표현황을 확인한 누군가 "이기고 있다"고 외쳤고 우리는 와글와글 한 방에 모여들어 환호했다. 그에게 표를 준 이도, 주지 않은 이도 있었지만 그 순간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을 한 마음으로 축하했다. 나 역시 내가 뽑은 첫 번째 대통령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환영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잠시 울었다. 금강산 생각이 났다. 안타깝고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잔인한 권력의 기록이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내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내가 처음으로 대통령이기 바란 대통령으로, 내가 뽑은 첫 번째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기를. 남아있는 가족들을 지켜주시기를.


by 안작가 | 2009/05/24 01:20 | 안작가의 일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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