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1일
직장 수난사 2-1편 - 매 맞는 아내의 마음?
제 고등학교 동창 중에는 실제로 당시의 남자친구에게 맞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은 모두 경악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컸던 모양입니다. 그 후에도 한참 만났던 걸 보면 말입니다. 매맞는 아내, 매맞는 남편이 꽤나 많다지요? 그들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다고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믿는다는군요. 3자가 보기엔 그거 정신병 아닌가 싶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두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자아찾기에 나선 저는 약 10개월간 나름의 자아찾기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요. 그 방식이 이제까지의 방식을 벗어날 수 없더란 거죠. 그랬으니 이제까지 하지 못한 자아찾기가 한 순간에 될리가 없었지요.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벌써 10여년째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 질문이 계속된 사이 저는 저대로, 제 방식대로, 그제까지 익숙한 방식대로 살고 있었으니 되리라 기대하는 것이 더 멍청한 짓이었는지 모릅니다.
일정 기간 과거와의 단절이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차는 갈아탔지만 도착지는 같았달까요. 첫번째 직장을 선택했을 때와 두번째 직장을 선택했을 때, 그리고 10여개월의 공백(하고 싶다고 생각한 공부를 한 기간이었습니다)은 결과적으로 모두 같은 선택이었습니다. 때마다 저는 성급했고 내게 자신없었고 그러면서 모두 절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했지요. 뭔가 하지 않는 것이 불안했을 뿐 언제나 절실하지 않았고, 현실은 이상처럼 만만하지 않고 그렇게 부서져라 부딪히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결국 돌고돌아 제자리였습니다.
저는 이제껏 한번도 꿈이라는 것을 미화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꿈은 그저 꿈일 뿐이라구요. 2002년 월드컵 때도 가장 마음에 안들었던 카드섹션이 '꿈☆은 이루어진다' 였죠. 꿈은 잠이 들어서야 환상처럼 체험하는 것, 실제로는 현실적인 제약들 때문에 내가 부서지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허망한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당시 저는 적어도 재미있어 하는 것은 발견했지만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투신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약하다면 약한 것이고 약았다면 약은 선택이었죠.
그러니 10개월의 시간은 제게 일말의 자신감도 주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나를 받아주기에는 나이도 많고 능력도 부족하다는 생각만 반복했습니다(연애든 취직이든 언제나 나이가 말썽입니다;;). 그러던 차에 두번째 회사의 선배들을 만났고, 엉뚱하게도 다시 돌아가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고 나를 아는, 내가 가장 오래 만났고 완전히 익숙한 그곳으로, 만약 받아준다면 돌아가자고. 상당히 과격한 표현입니다만, 매맞는 아내의 심정이었다고나 할까요? "가봐라, 나보다 괜찮은 사람 있는지" 하며 자신있게 보낸 상대에게 힘껏 콧방귀 뀌고는 "다녀봐도 너만한 사람 없더라" 하고 고개 잔뜩 숙이고는 제 발로 찾아갔습니다.
한 취업포탈사이트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2030 직장인의 13.6%가 퇴사한 회사에 재입사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 기사 보고는 옳타쿠나 내 얘기구나 반가워했는데 댓글을 보니 '미쳤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더군요. 하기사.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곳 말고는 나를 받아줄 곳이 없을 것 같은 그 마음을, 좋았던 것과 좋을 것만 기억나는 그 마음을 말입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제 결심만큼이나 신중하게 두번째 회사는 저를 선택해주었습니다. 새삼 우리 서로 사랑했던 시간이 거짓은 아니었구나 홀로 감격했던 기억이 나네요. ㅠ 아픔과 고난을 겪고 다시 만난 연인은 강해질 수 밖에 없는 법. 저는 숱한 고민의 시간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아낌없이 두번째 회사에 헌신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연애는 정말이지 최고로 달콤했습니다.
누군가 새로 만나 친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미 볼 거 안 볼 거 다본 사이에는 그 많은 시간과 노력, 생략. 뭘 해야 하는지 뭘 피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 불필요한 정력낭비도 생략. 자연스럽게 다시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 그 곳에 남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연애가 끝나는 데 주변 상황이 큰 역할을 하듯 회사를 떠나는 데도 주변의 상황이 큰 역할을 하더군요. 제가 두번째 직장을 완전히 떠난 이유가 그랬습니다.
이제 정말 제 세번째 회사 얘기로 돌아갑니다. 다시 돌아간 회사를 버리면서까지 선택했던 회사, 가장 화려하고 불타올랐으며 그만큼 짧고 상처가 깊었던 그런 연애 말입니다.
직장 수난사 1편 - 봉사와 다름없던 첫 연애
직장 수난사 2편 - 거죽은 번지르했던 회사와의 두번째 연애
# by | 2008/12/21 20:30 | 직장 수난사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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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연애도 그랬었지요.. 꼭 그랬었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