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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직자 미혼 여성의 추석 풍경

전날 새벽까지 만화책을 봤다. 그냥 본 정도가 아니라 울면서 봤다. 낼모레면 서른인데 아직도 고삐리들 나오는 만화책을 보면서 울 수 있는 내 감성이 새삼 놀랍다. 나는 정말 스토리에 감정이입하는 능력 하나만큼은 탁월한 것 같다.;; 무직자에게 밤은 낮보다 훨씬 가치있고 집중도 잘 되기 때문에 다음날의 밤을 위해 보던 만화책 몇 권은 남겨두었다. 

늦게 잠들었지만 7시 30분 전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잠을 깨우는 목소리는 언제나 똑같다. "oo아 밥 먹어라"로 시작하는 아빠의 비난. 가뜩이나 저기압인 아침시간에 잔소리로 일어나는 건 죽기보다 싫지만 전날 늦게 잠들었으니 별 수 없이 그 욕을 다 먹고 일어난다. 우리집에서 절대 용납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늦잠이다. 늦잠의 기준은 7시 30분. 일요일 아침에도 이 시간은 변함이 없다. 다만 일요일엔 아침밥 먹은 후에 다시 잠드는 건 용서받을 수 있다. 그래서  왠만큼 기분 좋은 일요일이 아니면 아침 먹을 때 꼭 잠이 깨지 않도록 조심한다. 회사 다닐 때야 7시 30분이 아니라 5시 30분에도 기상하니 잔소리 들을 일이 없는데 요즘 부쩍 강제로 깨워지는 날이 많아 스스로도 게을러지나부다 싶다.

아주 가볍게 아침을 먹고 전날 이사한다고 고생해 유난히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운동을 나갔다. 요즘 아침먹고 1시간 동안 조깅을 한다. 살짝 안개가 낀 시골길을 빠르게 걷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는 내친김에 욕실 청소를 했다. 비록 그 사실을 모르는 아빠에게 또 다시 말도 안되는 비난을 듣긴 했지만. 기분이 왕창 나빠져 오늘 하루 종일 아빠와 말하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우리 부모님은 모두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명절을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특히 푸짐하게 음식을 장만해 놓고 손님 대접하시길 좋아한다. 올해 역시 청소니 요리니 해야할 일이 많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두부까지 만드실 줄은 몰랐다.;; 그랬다. 샤워하고 나와보니 엄마는 생애 첫 두부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곧 이모가 오시고 이모와 나, 엄마는 두부 만들기에 이어 전부치기까지, 시간으로 따져보니 무려 8시간 이상을 요리에 매진했다. 물론 나는 중간에 30분 정도 낮잠도 자고 일어공부도 했지만 엄마와 이모는 정말 10분도 쉬지 않고, 무려 즐.겁.게. 요리 삼매경이다. 엄마와 이모라서 참 좋지만 시어머니라면 쉬지도 못하고 살짝 피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아주 쬐끔 들었다. 

요리하는 중간에 미심쩍어하면서도 내심 기대했던 자리(취업)에 충원계획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럼 그냥 없는거지 그쪽 관계자랑 밥은 왜 먹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또 하나 날라갔다고 생각하니 살짝 마음이 조급해져 청소와 요리가 한바탕 지나간 후에 취업사이트를 뒤졌다. 그래도 명절인데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전혀 궁금하지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하는 질문들을, 회사는 잘 다니느냐, 애인은 있느냐, 결혼해야 하지 않겠느냐, 들을 생각을 하니 자신에게나마 조금은 떳떳해지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자격지심만 는다.;;

내일은 다시 전부치기와 송편만들기, 저녁에 또 한번 대규모 손님치르기가 있을 예정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7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느낌이지만 사실 나 역시 이런 떠들썩한 명절 분위기가 싫지 않다. 한동안 집안 내 음주는 하지 않았건만 다시 맥주 한 캔을 꺼내 들었다. 막상 부칠 때는 냄새에 질려 거의 먹지 않았던 동그랑땡이 안주다. 살 찌니까 2개만 먹어야지.;;

올해 보름달에 빌 소원은 이거 하나다.

달님, 제게 꼭 맞는 멋진 직업을 주세효~ ㅠ



by 천군만마 | 2008/09/12 20:44 | 안작가의 일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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