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07일
<이산>, 픽션이 주는 논픽션의 힘
이산. 요즘 최고로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다. 사극이 줄줄이 나오는 터라 크게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우연히 재방송으로 2회 마지막 10분을 보고 그대로 반해버렸다. 똑 부러지는 지빈군 연기와 드라마틱한 전개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2회에 벌써 성인이 된 주인공들의 모습이 나온 예고편이 굉장히 흡인력 있었다.
나는 불멸의 이순신이나 여인천하처럼 큰 인기를 누렸던 대부분의 사극을 보지 않았다. 너무 '사극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에 크게 기댄 사극은, 대부분 언제 채널을 돌려도 가채 두르고 방에 들어앉아 이를 바득바득 갈거나 둘러 앉아 모략이나 고민 따위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의 성공이나 좌절은 역사적 사실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굳이 드라마틱하게 즐길 요소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장금은 달랐다. 대장금은 내가 기억하는 한 사극에서 보여준 최초의 성장스토리였다. 역사적으로 허구에 가까운 인물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하는 캐릭터가 나올 수 있었고 수랏간이라는 매력적인 공간은 그 인물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대장금은 논픽션의 탈을 쓴 픽션의 힘을 보여준 드라마였다.
이산 역시 그렇다. 정조라는 확고부동한 역사적 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여기에 송연이라는 인물을 넣어 픽션에 더 힘을 실었다. 정조는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인물이지만 정조 이야기만 했다면 역사의 재구성에 그쳤을 지 모른다. 하지만 정조에게 어릴 적 동무가 있고 이 동무는 여자이며 그 여자는 도화서의 다모라면? 논픽션의 인물에 픽션의 인물을 엮고 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이산이 가진 힘이다. 이 픽션 덕분에 이산은 사극이지만 대장금처럼 시대를 뛰어넘는 캐릭터 구성이 가능했고 현대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스피디하게 전개할 수 있었다.
이산에는 장금이가 둘이다. 온통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야 하는 정조가 하나고 정조의 어릴적 동무로 도화서에서 다모로 일하며 언제고 기회가 있으면 빛날 그림실력을 지닌 송연이 둘이다. 둘은 양쪽에서 성공스토리를 그려가고 둘이 만나 러브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이들이 겪는 음모와 역경, 우연과 지혜의 구도 역시 대장금과 굉장히 흡사한데, 이처럼 역사를 배경으로 하되 성장과 성공을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에피소드는 대장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산을 끌어가는 힘이 되고 있다. 논픽션의 탈을 쓴 픽션의 힘이다.
여기에는 역시 이병훈 PD의 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대장금에서 빛을 발했던 이병훈 PD의 스피디하고 긴장감 넘치는 연출은 이번에도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대장금 때보다 그 세련미와 속도감은 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겨우 6화니 판단은 이르지만 앞으로도 잔뜩 기대된다!
# by | 2007/10/07 16:24 | 드라마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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