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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시면 곤란하다구욧

8시 10분에 출근해 메일을 확인했다. 도착한 메일에는 "이 저자 어떤감?"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원고는 없고 (될 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예비저자의 블로그 URL이 있었다. 저자 감인지, 내용은 잼있는지 보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에 킵 해두고 다른 메일들을 처리. 오늘따라 우리 팀 사람들은 조금씩 늦게 출근했고 9시에 부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당연히 어제 있었던 회의의 연속이겠거니 하고 준비해 들어갔다가 엉뚱한 비난을 듣고 하마터면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따질 뻔 했다. 그 분 머리 속 스케쥴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언제나 생각나는 일이 먼저, 떠오른 생각이 먼저. 덕분에 오늘은 매출을 고민했다가 내일은 아이템을 고민하고 그 다음날에는 재고도서 처리안을 생각해내야 하는 비효율적인 시간낭비만 일년 째다.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건 당연지사. 그에 따른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건 필수고 당췌 나는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거냐 자기비하 하게 되는 건 선택이다. 한번은 작정하고 이런 건 문제다, 이래서야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한테 어디까지 하라는 거냐, 나이브하게 따져봤지만 하나도 못 알아 들었나보다.

정말이지, 오늘은 하마터면, 멱살을 잡을 뻔 했다.

그리고 자리를 돌아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쌍시옷이 난무하는 단어들을 속으로 읊조리고 있을 때 다시 회의 호출. 또 뭔가 싶어 갔더니 이번엔 팀원들이 함께다. 그때부터 점심시간을 거쳐 장장 5시간 릴레이 회의. 이런 회의는 예전 회사의 TFT 소속일 때 말고는 해본 적이 없다. 느닷없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잘 모르는 용어들이 오가는 회의 내내 지금 얘기해야 하는 건 이 게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만 반복. 물을까 말까 했지만 설마 이런 것도 생각 안하고 회의하는 걸까 싶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그 말을 꾹 참았다.

그 회의에서 내가 궁금한 건 단 하나였다. 당신의 그 아이디어가 당신이 생각하는 그 목표에 정말 부합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난 아닌 것 같았으니까! 정말이지 아니니까. 도서 담당자를 신 사업 모델을 논하는 자리에 굳이 부른 건 머릿 수라도 하나 늘리면 낫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내가 다닌 예전 회사가 당신들 생각하는 모델과 많이 유사해서가 아니었냔 말이다. 그런데 내 의견 따위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고 이미 진행된 얘기도 있는 것 같고 설마 이런 논의를 그런 기본적인 전제에 대한 동의 없이 할까 싶어 꾹 참았다. 게다가 나는 막내고 이 분야를 잘 모르기도 하니까.

그런데, 회의 5시간 만에 내가 하고 싶었던 바로 그 질문을 꺼내며 힘 빼는 걸 보면서 이건 또 뭔가 싶었다. 난 도대체 5시간이나 이 테이블에 왜 있었던 걸까;;

허탈해하며 자리로 돌아왔더니 이미 퇴근 시간은 지났고, 부장님 지나가시며, "내일 상무님 회의해야 하니까 오전에 얘기한 거 정리 좀 하지?". 몇 시간 야근해서 유니크한 마케팅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마케팅 책 따위 팔리지도 않을거다. 거기에 한 술 더떠 오전 8시 반에 메일 확인하며 겨우 한 번 본 블로그에 대해 이 책이 되겠냐고 물어보니 난 그와 함께 한 7시간 가까운 회의 동안 영혼을 모니터 앞에 두고 왔어야 했나보다. 이쯤되면 미니미라도 만들어 키워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스케쥴링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건의해야겠단 생각이다. 충분히 고민하고 열정을 쏟아도 어려운 일을 이렇게 그저 부장의 변덕에 쫓기며 주먹구구로 할 수는 없다.

아, 하루 종일 이 분노 게이지가 줄어들지 않는다. ㅠ



by 안작가 | 2009/11/17 19:32 | 직장 수난사 | 트랙백 | 덧글(5)

Day2. 요정이 사는 숲, 플리트비체

서론이 길었네요. 정작 중요한 건 플리트비체의 경관이었을텐데요.ㅎ 아침 일찍 일어나 전날 먹다 남은 피자를 먹고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심히 따뜻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서늘하다 못해 조금 춥다고 할 수 있는 날씨였어요. 하지만 하늘은 끝내주게 눈부시고 푸르러 입구를 향해 가는 동안 심히 설레였습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입구입니다. 여기서 표를 구입할 수 있고 짐을 맡길 수 있는 사물함도 있어요. 짐을 맡기는 건 5쿠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위니와 제 트렁크가 한 사물함에 다 들어갔어요.


저희는 H 코스를 선택했는데 이 코스를 다 돌아보는 데 4시간에서 6시간까지 소요됩니다. 저희는 9시쯤부터 오르기 시작해 중간에 점심을 먹고 내려오니 3시 반이었어요.



이 버스를 타고 숲의 입구까지 이동합니다. 버스 위 사진이 버스를 기다리는 곳의 풍경인데요. 여기가 국립공원이라 그랬는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더군요. 파릇파릇한 젊은이는 저희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크로아티아에 가겠다고 결정하게 만든 플리트비체의 풍경입니다.

정말 정말 물이 맑았습니다. 물 색깔도 가지가지였어요. 이렇게 보면 에메랄드 색인데요.

이렇게 보면 비취색이에요. 물이 어찌나 맑은 지 물고기가 수만마리 노닐고 있었습니다. 물 안의 반짝반짝 한 것은 동전이에요.

이렇게 보면 물빛이 연두색이죠. 저 나무는 수면에 비친 모습이 아니라 물 안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실제로 보면 신비한 느낌이 들어요. 플리트비체는 세계문화유산이라는데요. 정말 어디 하나 동시대의 어느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또 그냥 눈 시리게 투명하죠. 다시 생각해도 참 특별한 곳이에요.

H코스는 중간에 배를 타고 반대편 숲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요. 배 안의 저 커플, 완전 부러웠습니다.ㅎ 입장료에 배 삯이 포함되어 있고 배를 탈 때가 아니면 표를 보여줄 일이 없습니다. 사실상 티켓은 배 삯이라고 볼 수 있어요.

배를 타고 건너오면 식당이 있어 요기가 가능합니다. 저희는 포크커틀릿과 수제소시지, 맥주를 먹었어요. 맥주 정말 맛있었습니다.ㅎ
식당 근처가 이런 잔디밭이라 평화로운 피크닉을 만끽하는 기분이 듭니다.

배를 건너오면 그때부터 진짜 장관을 만날 수 있어요. 크로아티아로 떠나기 전 다녀오신 다른 분들의 블로그에서 이런 각도의 사진을 많이 봤었는데 저도 만나게 되더군요.^^

여기서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는데 어떤 사진도 실제 그 경관을 보며 느꼈던 숨막혔던 기분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요. 정말 어디선가 인간이 아닌 생물체가 튀어나올 것 같은 곳이에요. 자연이 압도적이라 내가 이곳에 특별히 초대되었다는, 허락 받았다는 겸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숭배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제가 경험한 가장 순수하게 맑은 곳이었습니다.

by 안작가 | 2009/11/16 18:14 | - 엉망진창 크로아티아 여행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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